진실찾기

우주적 사고 2007/04/18 03:35


읊을"역"이란 글자가 있다. 말한다.
"말한다"는 것은 어쩌면 세상의 변화를 인식하는 "읽기"의 또 다른 이름이다.
"생이지지" - 배우지 아니하여도 스스로 깨닫는다. -라 하였다. 우리는 "앎"을 본능적으로 갖춘 존재이며 또한 다른 존재자와의 관계속에서 그리고 나를 둘러싼 物 과의 관계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객체가 아닌 주체로써 우리의 사고가 확장되어 자아를 찾을 수 있었던 것은 문자의 발생과 함께 한다. "학이지지" - 배워서 앎에 이른다 - 라는 말처럼 배움에 이르기위해 문자가 만들어졌고, 동양의  한자 문화권에서 "한국"사람은 사고를 해왔다.

책의 수량을 뜻하는 "권"이란 말린 종이의 모양을 의미한다.
문자의 발생은 주체를 찾을 수 있는 철학적/심미적 사고 능력을 줬고 철학/종교에 이어 문화/문명에 이르는 과학에까지 사고를 확장시키도록 실마리를 던져주었다.

동양에서는 기원전 3세기에, 메소포타미아에서는 그보다 훨씬 전인 5,000년전 에헤두하나라는 여사제가 최초의 "시"를 지었다고 한다. 세상을 읽은 주체의 사고를 담은 시가 5,000년 전에 있었다는 건 너무나 위대한 일이다.

세종대왕은 한국사람에게 진실을 찾을 수 있는 실마리를 푼 위대한 사람이다.
그 이전에도 있었다고 말하는 분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다.

신라시대의 향가라는 것도 말그대로 주변 시골의 투박한 노래라는 뜻이다.
중국의 노래가 정통성을 인정받은 노래라면 향가는 변두리 음악이란 뜻이다.

고려시대 제왕운기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역대 "황제"에 대한 찬양이 있고, 그 옆에 아주 작게 한국의 "왕"에 대한 서술이 있다. 우리의 역사는 세종대왕이전까지 단 한번 주체로써의 사고를 하지 못했던 것이다.

세종대왕은 한글이 "암문이다", "반문이다", "하찮은 언어다"라는 말들을 일축하고 한글에게 "정음"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세상의 바른 소리". 그래, "훈민정음". 나에게 너에게 바른소리....

진실을 보는 방법에는 3가지가 있다.
첫번째는 진실을 만날때 새로운 눈을 꺼내어 보는 방법이고,
두번째는 손으로 저편에 있는 진실을 이끌어내는 방법이다.
그리고 세번째는 어진자의 눈을 통해 어진자의 것으로 만들어진 진리를 보는 방법이다.

세종대왕은 세번째 방법을 한국사람에게 제시해준다.

요즘 언어와 철학에 관심이 많다.
사변적인 독일어는 새로운 것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고, 창조적/낭만적인 불어는 담론을 많이 낳고 있는 재밌는 언어이다. 중국어는 해석적이다. 예를 들면 "자비"라는 말은 "아기가 울때, 어머니가 아파하는 마음을 나타낸다."

그리고 그리고 우리말은???

주어를 발전시키지 않는다.
주어의 생략이 많다.
명사가 부족하고 형용사가 많다.......

신기하게도 역사적 맥락과 같이 한다..

"여상면목"이란 말처럼 안개가 걷히길 바라고 바래본다. 언젠가 본래의 모습을 볼 수가 있겠지..라고.."직지인심"...세상을 바르게 읽을 수 있는 현명한 눈을 갖기 위해 나는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1인칭은 늘 슬프다.
지금까지 내가 진리라 믿었던 것들이 이내 곧 모순됨을 깨닫기 때문이다.

주역에는 "변화"야말로 진리라는 말이 있다.
그리스의 옛말에는 "자연이 자라난다"는 말이 있다.
나의 안과 밖. 그래 어쩌면 요즘 '나'의 안과 밖에 '변화'가 있다걸 깨닫게 되어 즐거운지 모르겠다.
그곳에 진실이 있다.

당신은 진실을 찾아본 적이 있습니까?

Posted by 백구씨쥔장